2015년 5월 25일 월요일

Traumnovelle

#미번역 그래픽노블 '꿈의 노벨레'
(오늘은 본이 씁니다.)


시작하기 전 , 사족.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지난 포스팅에서 언급했던 20세기의 철학자 커플,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관계는 보통의 부부관계와는 달랐다. 같은 공간에서 살지도 않았으며 서로에게 완전한 자유 연애와 혼외정사를 보장했다. 당시로서도 지금으로서도 아주 파격적인 계약 결혼 관계였다. 당시 사르트르는 보수적인 사회에 답답함을 느끼고 있던 프랑스 청년들에게 청량한 사상을 전파하는 '사이다'같은 존재였다고 하는데, 연애에 있어서도 그는 완벽하게 실험적이었던 모양이다.
단, 조건이 하나 있었다. 서로에게 그들의 관계 밖에서 이루어진 연애의 모든 것을 말해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었다. 실제로 그들은 상대방과의 적나라한 성관계 묘사도 적극적으로 공유했다. 서로 만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서신으로 자신들의 정직한 관계를 유지했다. 기억하건대, 보부아르가 사르트르에게 보낸 편지에는 이런 구절이 있었다.

"어젯 밤, 정말 굉장했던 것은 보스트와 섹스를 했다는 것이에요."


Traumnovelle(꿈의 노벨레)의 프리돌린과 알베르티네

배우자의 혼외정사에 사르트르는 의연했을지 모르지만, 이 책의 주인공 프리돌린은 그러지 못했다. 매력적인 의사 프리돌린과 헌신적인 아내, 알베르티네는 그야말로 '모범적인 가정'을 꾸리며 이성적이고 이상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저녁, 알베르티네가 자신의 은밀한 욕망을 고백하는 것으로 일은 시작된다. 



"있잖아,
내가 오늘 하루 종일 
어떤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는지 알아요?"


알베르티네는 휴양지에서 스쳐지나간, 젊은 덴마크 장교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비록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젊은 장교를 향한 그녀의 강렬했던 성적환상과 욕망에 대해.


"당신이 그렇게 가깝게 느껴지지 않았어요.

한 순간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당신, 아이, 우리의 미래
그 모든 것들을
그와 함께라면 내던져 버릴 수 있을 것 같은."


프리돌린은 알베르티네의 내밀한 욕망에 대해 듣고 혼란에 빠진다. 다른 남자를 원하는 '나의 아내'에 대해서 그는 한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알베르티네가 장교와 성관계를 맺은 것도, 사랑의 밀담을 나눈 것도 아니지만 그는 계속해서 "덴마크 젊은 놈"에 대한 상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그 날 밤, 
그 또한 자신의 욕망을 따라,




위험하고 환상적인 난교 파티에 숨어든다.




아르투어 슈니츨러(Arthur Schnizler)

이 그래픽 노블은 오스트리아의 작가, 아르투어 슈니츨러의 같은 제목의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아이즈 와이드 셧"(Eyes Wide Shut)도 이 소설이 원작이다. Novelle란 사실 다른 게 아니라, 14~16세기 경 이탈리아에서 유행한 단편 소설 양식이다. 그러니 뜻만 보자면 이 소설의 제목은 "꿈 단편"이나 "꿈 이야기" 정도가 되겠다. 한국에서는 이 소설 양식을 따로 지칭하는 개념이 없기 때문에, 발음 그대로를 차용하여 "꿈의 노벨레"로 번역되었고 현재 문학동네에서 출판되어 있다. 아르투어 슈니츨러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동시대에 오스트리아 빈에 거주하며 그의 이론에 강하게 매료되었던 것으로 알려져있으며, 그의 작품에도 이러한 면이 상당 부분 녹아있다. 프로이트도 자신의 이론을 예술로 승화시킨 슈니츨러의 작품에 경탄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점을 참고해서 이해하면 더 재미있을지도.


야콥 힌리히 (Jakob Hinrichs)

소설도 있고, 영화도 있다. 그럼에도 이 그래픽 노블을 추천하는 이유는 일러스트레이터 야콥 힌리히의 시각적 표현이 재미있기 때문이다. 다분히 '독일'스러운 원색적인 색감도 감상 포인트 중 하나. 또한, 곤충이나 아이스크림으로 특색있게 인물을 표현함으로써 작가 자신이 이해한 소설 속 세계를 환상적으로 표현한다. 


화면의 독특한 구성 또한 흥미롭다. 한 컷, 한 컷이 단편적인 일러스트 작품이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훌륭하고, 또 원작이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글자'을 사용하지 않고도 그림만으로 서사적인 구조를 무리없이 풀어낸다.




마지막으로, 소설과 영화 그리고 이 그래픽 노블의 '완결' 방식에 차이가 있다. 소설에서는 여느 하루와 똑같은 소음으로 아침이 밝아온다면, 아이즈 와이드 셧에서는 니콜키드만이 의뭉스러운 대답으로 끝나지 않은 기분을 느끼게 한다. 그렇다면 이 그래픽 노블에서는? 직접 확인하시길!

Der Boxer - Reinhard Kleist

#3. 미번역 그래픽노블 “복서”


우리나라에서 ‘하바나 쿠바 여행기’(학산문화사)라는 책으로 알려진 작가, 라인하르트 클라이스트의 biography 그래픽노블 ‘복서’입니다.



이 책은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폴란드계 유대인 복서 '해리 하프트(본명 Hertzko Haft)'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화입니다.
물론 보다 앞서서 아트 슈피겔이 ‘쥐’라는 그래픽노블로 아우슈비츠의 비극을 그려냈지만, 클라이스트는 이보다 실제적으로 그려내길 원했다고 합니다.

해리 하프트를 모르는 한국독자들을 위해 간단한 줄거리를 요약해 보겠습니다.

가난한 야채상의 아들인 해리 하프트는 16살때 아우슈비츠에 수감됩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레아(Leah)라는 연인을 남겨두고서 말이죠.
혹독한 노동과 다른 유태인들의 죽음을 목격하면서 16살의 해리는 공포를 뼈속 깊이 각인합니다.


유태인 형제들의 죽음을 목격하고 좌절하는 해리

하지만 해리는 삶을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레아(Leah)를 다시 한번 만나는 일입니다. 
어느날 그는 SS장교의 손에 이끌려 아우슈비츠의 복서가 됩니다. 독일군들의 유희를 충족시켜주고 그 댓가로 목숨을 부지하는 이 게임에 그는 단 한번도 패배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승리가 더해질수록 죄책감도 커져갔습니다. 자기가 때려 눕힌 상대(이 역시 유대인) 가스실로 끌려간다는 사실을 알고있었으니까요.

아우슈비츠에서 목숨을 건 복싱경기

결국 그는 아우슈비츠를 운좋게 탈출하고 그로부터 얼마지나지 않아 전쟁을 끝이 납니다.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아직 레아를 만나지 못했으니까요. 
그는 레아와의 재회를 꿈꾸며 미국으로 이주를 합니다. 하지만 미국이라는 거대한 대륙에서 사람 한 명을 찾는 것 쉬운일이 아니었습니다. 해리는 레아가 신문에서 자신의 얼굴을 발견할 수 있을 만큼 유명해지는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직업복서로서의 인생을 시작합니다. 
그는 복서로 성공하게 될까요? 그리고 정말 꿈에 그리던 레아를 만나게 될까요?

감상 포인트

1. 작가 라인하르트 클라이스트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같은 테마는 선정적으로 보이기 쉬워서 
  "카메라를 최대한 멀리두고 이야기의 원경을 잡아보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럴까요? 아트 슈피겔의 ‘쥐’와는 다르게 조금 더 현실적이라는 느낌을 받았고 깊은 공감을 이끌어냈던 것 같습니다.

작가 라인하르트 클라이스트

2. 액자식 구성의 도입부가 인상적입니다.
   이 만화의 화자는 작가도 아니고 주인공도 아니고 주인공의 아들, 알란 하프트입니다. 따라서 이야기는 아들인 알란이 폭력꾼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는 흐름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전쟁의 어제와 오늘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작가의 플롯을 따라가다보면 우리 안에서의 어떤 모순을 발견하게 됩니다. 가령 이 소설속에서 이런 질문을 던져볼 수 있습니다. "해리 하프트를 그저 희생자로만 볼 수 있을까?” 처음엔 이 질문에 간단히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만화를 다 보고나서는 오히려 말문이 막혀버리더군요. 

아래 그림들은 도입부 전체입니다. 부족한 실력이지만 이해를 돕고자 직접 번역해보았습니다.

1963년 9월, 마이애미

지금 음악 틀지마!

아버지는 자신이 무언가를 말할때 이의제기를 허락하지 않으셨다.
나는 차라리 내 동생들과 수영장에 가고 싶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내가 반드시 자신과 동행해야 한다고 강요하셨다.

나는 아버지에게서 자주 공포를 느꼈다. 내게 있어서 아버지는 과거 복싱선수였던, 세상에서 가장 강한 남자였다.
그는 아들과 야구를 하며 함께 놀아주는 그런 종류의 아버지는 아니었다. 그리고 성미가 급해 자주 화를 내곤 했다.

어머니는 내게 그의 폭력적인 성격을 그가 겪은 무시무시한 과거를 들려줌으로써 이해시켜 주려고 노력하셨다. 

나는 그것을 전혀 듣고 싶지 않았다. 현재만으로도 내겐 충분히 나빴다.


너가 오늘 함께 와줘서 고맙구나.

언젠가 이 모든걸 네게 털어놓을꺼다.

오늘의 미번역 그래픽노블 소개는 여기까지입니다.
이 작가의 다른 작품이 궁금하다면, http://www.reinhard-kleist.de/

이 작품이 더 궁금하시다면 댓글이나 grandline478@gmail.com 으로 연락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015년 5월 22일 금요일

선원을 모집합니다

저희는 위대한 항해의 선원인
윤과 본입니다.
저희와 함께할 선원을 모집합니다.

grandline478@gmail.com


파도와 폭풍우 속에서도 전진할 수 있는 항해지침서


우리보다 먼저 항해를 시작했던
조 선배(조지프 캠벨)는 우리에게 세가지 항해 지침을 전수해 주었다.

첫째, 굶는 것을 걱정하지 않는다.

둘째, 내일 무엇을 할지를 불안해 하지 않는다.

셋째,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조 선배의 가르침을 토대로 우리의 위대한 항로을 세워보았다.


1. 번역해서 책으로 출판해보기(그림책이나 소설 등 종류를 무관하고 한국에 소개되지 않은 좋은 책을 번역해 본다. 특히 아이들을 위한 책!)

2. 우리의 손으로 쓰고 그려낸 그림책을 만들고 출판해보기

3. 스페인 순례길을 걸어보고 여행일지를 책으로 출판해보기

4. 최소 4개국어를 습득해보기(언어를 습득하는 일이 타지를 체험하는 첫번째 관문이다, 목표는 그 나라의 연극을 이해하는 수준까지)

5. 멋진 대자연속에서 번지점프해보기(본의 간절한 소원)

6. 서핑, 스노쿨링을 즐기면서 할 정도로 실력을 갖추기(윤의 소원)

7. 거장이 이끄는 연극에 팀원으로 참여해보기

8. 악기를 배워보고 작곡을 해서 우리의 노래를 불러보기

9. 우리가 살집은 우리가 짓기(옷, 가구 포함)

10. 문학창작 해보기(소설, 희곡, 시 써보기)

11. 우리가 만든 작품들 전시 해보기

12. 판화, 스탠실을 할 수 있는 장비를 갖추고 그림, 옷, 가방 만들기

13. 뜻이 맞는 친구들을 모아 이러한 프로젝트를 함께 해보기

13. 이 프로젝트의 진행경과를 팟캐스트로 방송해보기

14. 다른 친구들의 꿈의 항해를 도와줄 수 있는 ‘용기플랫폼’ 만들기!

이 프로젝트는 끊없이 추가 될 것이고 우리와 함께한 선원들은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겠지만) 늘어날 것이다. 이제 닻을 올려볼까 한다. 끝까지 지켜봐 주었으면 한다.

위대한 항로의 자기소개서



우리 각자의 인생은 항해이다. 
이 항해가 위대한 항해가 되기 위해선 위대한 항로가 필요하다. 
위대한 항로는 다른 누군가의 항로가 아닌 우리만의 항로이다.

물론, 청춘들의 꿈을 응원하겠다는 문구는 많고, 재정적으로 지원해주겠다는 단체들도 많다. 단, 그들에게 선택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가진 목표의 위대함을 증명해야한다. “우리의 꿈은 위대한 마음으로 계획한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며, 그 꿈을 성취하는 순간 우리 또한 위대해 질 것이다.”라고. 우리가 향해 갈 섬이 정말로 멋있기 때문에, 우리가 시작하게 도와달라고 얘기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많은 경우 선택되지 못해 시작도 못하거나, 선택된다 해도 우리의 꿈들은 검증된 만큼만 채워지고 흩어진다.

여기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 누구든지 다음 섬을 향해 갈 수 있다. 

우리는 그 항로를 
새로운 어떤 것도 생각하지 말고 
성취도 생각하지 말고 
그와 비슷한 다른 어떤 것도 생각하지 말고 
내가 지금 무엇을 하면 행복할까만 생각했을 때 나온 그 생각. 
그 생각에 근거해 우리만의 항로를 개척하고자 한다. 

시작은 위대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작고 재밌는 시작이다. 
하지만 우리의 항해는 반드시 위대해야 한다. 그렇다면 선원이 필요하다. 마음 맞는 사람 셋이면 천하를 바꾼다고 누군가는 말했다. 원피스의 루피도 조로와 나미가 없었다면 항해를 시작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한번 해보자. 우리와 함께 항해할 마음 맞는 선원을 찾아보자. 그리고 출발하자. 우리의 위대한 항해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2015년 5월 21일 목요일

Oh diese Mädchen!

#미번역 그래픽노블 ', 소녀들!' 
(베를린의 본입니다. 윤과 함께 글을 씁니다.)


사르트르의 연인이었던 철학자 시몬 드 보부아르는 자신의 저작 2의 성에서 이렇게 얘기했다.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

역사적으로 이상적인 여자는 신비롭고 아름다운, 비정상적인 존재로 여겨져왔다는 것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보부아르는 이러한 관점이 여자를 사회적인 타자로 만들며, 여성 스스로도 자신을 타자로 인식하게끔 한다고 얘기했다.

그래서일까. 모파상이 쓴 여자의 일생에서 잔느는 선택하지 않은 채 몰락하며, 류드밀라 울리츠카야의 소네치카는 인내한 채 늙어간다. 우리가 위의 두 작품을 읽으며 안타까움과 함께 답답함을 느끼는 이유는 그녀들이 '여성'이 아니라 '여자'인 타자이기 때문에 그녀들의 상처나 운명을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는데 있다.


지금은 2015년 이다. 쟌느로부터는 140여년 정도가 흘렀고, 소네치카로부터도 30여년이 흘렀다. 중간에는 빨간머리 삐삐 롱스타킹도 등장해서 독립적인 소녀들의 롤모델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이제는 여성들을 소외받고 연약한 존재로 묘사할 경우, 기분 나빠할 사람들도 많을 정도로 여성들은 자신의 '자기성'을 많이 찾아왔다. 그래서인지 이 그래픽노블은 선택하지 못하거나 상처받은 만들어진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기 보다는 타자로써 남아있지 않고 자신의 삶을 선택해 가려는 세 소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세 소녀

셋은 각기 다른 상황에서 태어난다. 탄생의 순간에서부터도 우리는 이 세 소녀가 각기 다른 삶을 살아가리라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일종의 암시인 셈이다.

클레어


라일라


아그네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들의 삶을 함께 따라가다 보면 이 셋에게 공통적으로 녹아있는 어떤 숙명적인 안타까움을 느끼게 될 지도 모른다. 


Emmanuel Lepage


이 그래픽 노블의 저자는 "체르노빌의 봄"으로 우리에게 익히 알려져 있는 엠마누엘 르파주이다. 작품을 위해 체르노빌에 직접 방문한 것으로 화제가 되었다.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 따르면 그는 공상적인 것 보다는 르포르타주적인 작품을 만드는데 관심이 있는 것 같다. 아직도 침몰하고 있는 우리의 세월호 사태에 대해서도, 관심을 보이고 직접 유가족들을 방문했던 것이 기사화 되기도 했다. 그 곳에서 그는 "진실을 위해 싸우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싶었다." 라고 얘기한다. 이 작품, '오, 그 소녀들!'도 그저 지겨운 페미니즘적 동정심리에 기대는 작품, 이라는 선입견을 조금 벗어놓고 작가의 사상을 염두에 두고 일독하면 더욱 재밌을 것 같다.

이 작품은 "체르노빌의 봄" 조금 이전의 작품으로 Sophie Michel의 텍스트와 함께 작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5년 5월 20일 수요일

Ganz allein

# 미번역 그래픽노블 "완전한 고독"
(베를린에 있는 윤입니다. 앞으로 미번역된 그래픽 노블을 소개해볼까 합니다.)



타인은 지옥이다. 

사르트르가 한 말이다. 타인의 시선이나 평가속에서 우리는 나를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지만 그것은 불편한 진실일 때가 많다는 얘기일 것이다. 하지만 타인이 없고 나로만 가득차 있는 세상은 또 어떨까? 그곳은 천국일까?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가면서 여러번 고독을 꿈꾼다. 출근길의 지옥철에서, 학교나 직장에서, 심지어 가장 편해야 할 가정에서조차 우리는 타인이 없는 자유로운 공간을 꿈꾼다. 아마 그곳은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온전히 나일 수 있을거라 상상하면서 말이다.
어쩌면 그곳은 샐린저가 살 것같은 숲 속의 오두막일 수도 향 내음이 나는 절 같은 곳일수 있다. 하지만 이런 곳은 어떨까? 파도소리와 저멀리 지평선만 보이는, 바다 한가운데 홀로 떠있는 작은 등대. 한적하고 좋을 것 같지 않은가? 혹 굶어 죽는 게 걱정이라고? 만약 이름 모를 친절한 누군가가 매일 배로 먹고 마실 것을 놓고 가준다면? 매혹적인 곳이지 않을까? 
단 단서가 있다. 10년 이상을 홀로 살아야 한다. 누구와 말을 나눌수도 없고 읽을 거라곤 사전 한권 밖에 없다.(물론 TV와 인터넷은 없다) 
어떤가? 여전히 이 등대가 당신이 꿈꾸는 곳인가? 아니면 감옥인가?



자신이라는 감옥에 갇히다

여기 50년을 그렇게 산 남자가 있다. 우리는 첫 페이지에 등장하는 갈매기에 조용히 시선을 주고 따라가다 보면 그를 만날 수 있다. 이름도 정확한 나이도 모르지만(50대라고 추측할 뿐이다) 사람들은 그를 몬스터라고 부른다. 왜 그는 외딴 등대에 홀로 살게 된 것일까? 
이유는 이렇다. 오래전 그의 부모님이 세상을 등지고 등대로 이사를 왔고 이후 그를 낳았다. 그리고 그는 자라는 동안 부모로부터 세상의 무서움을 전해 들으면서 자연스럽게 바깥 세계에 공포를 갖게 되었다. 결국 그렇게 그는 부모가 죽어서도 등대에 홀로 남겨져 살게 된 것이다.


그의 하루 일과는 이렇다. 아침에 어부가 주는 식료품을 자기가 거주하는 등대탑으로 옮긴다. 어항 속 물고기 한마리에게 먹이를 준다. 해가 지기 전까지 낚시를 한다. 해가 지고 나면 그의 유일한 취미인 ‘단어상상놀이'를 한다.(이 놀이는 사전을 책상에 떨어뜨려 펼쳐지는 페이지에 기입된 단어를 읽고 그 내용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는 것이다. 그렇다. 세상경험이 없는 그는 전적으로 내용을 상상해야만 한다. 가령 Schlacht를 읽고 전투를 상상해본다)





그와 유일하게 관계를 갖는 사람은 그에게 식량을 대주는 어느 한 어부이다. 하지만 말을 나누지도 얼굴을 아는 사이도 아니다. 그저 그의 부모님의 죽기 전 부탁을 성실히 이행할 뿐이다. 그러다 어느날 한 청년이 그 어부와 함께 일하게 된다. 청년은 처음에 어부의 이러한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사정을 전해들은 후 등대에 홀로 살고 있는 그에게 차츰 관심을 갖게 된다.

어느날 청년은 그에게 쪽지 한 장을 남긴다.

“Was würde Ihnen Freude machen? (무엇이 당신을 기쁘게 하나요?)"



그 한 장의 쪽지가 그를 조금씩 바꾸어 놓는다. 그는 사전 속에서 Reise(여행)라는 단어와 Schabernack(장난)이라는 단어를 읽는다. 그는 점점 호기심을 갖게 된다. 그리고 어느날 그는 그 청년에게 이렇게 답장을 한다.

“Bilder von der Welt(세상의 사진들)”

그 답장을 보고 청년은 세상 곳곳의 사진들(기모노를 입은 여인, 해맑게 웃는 아프리카의 어린이들, 강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들, 콜로세움, 도시의 마천루 등이 찍힌 사진들이다)을 그에게 건너준다. 그는 그 사진들을 하나 하나 벽에 걸고 세상을 꿈꿔본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여전히 세상을 두려워하고 있다. 아니 어쩌면 그 공포는 더 커졌을 것이다. 공포는 희망의 크기에 비례하기 마련이니까. 게다가 거울 앞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끔찍하다는 사실도 잘 인지하고 있다. 그는 마지막으로 Gefangnis(감옥), Verurteil(편견), eingesperrt(감금된), trostlos(우울한, 쓸쓸한)라는 단어를 읽고 사전을 바닷속으로 버린다.


과연 그는 세상으로 나올 수 있을까?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그는 이제 결단해야 한다. 그의 한 손에는 밧줄이 다른 한 손에는 가방이 들려있다.





2015년 5월 19일 화요일

















내가 만일 다시 젊음으로 되돌아간다면,
겨우 시키는 일을 하며 늙지는 않을 것이니
아침에 일어나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이 되어
천둥처럼 자신에게 놀라워 하리라
() 깊은 곳에 나를 숨겨 두었으니
헤매며 나를 찾을 밖에
그러나 신도 들킬 때가 있어
신이 감추어 나를 찾는 나는 승리하리라
세상에서 내가 가장 잘할 있는 일은 무엇인가
이것이 가장 훌륭한 질문이니
하늘에 묻고 세상에 묻고 가슴에 물어 길을 찾으면
억지로 일하지 않을 자유를 평생 얻게 되나니
길이 보이거든 사자의 속으로 머리를 처넣듯
용감하게 길로 돌진하여 의심을 깨뜨리고
길이 보이거든 조용히 주어진 일을
신이 나를 어디로 데려다 놓든 그곳이 바로 내가 있어야
위대함은 무엇을 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며
무엇을 하든 그것에 사랑을 쏟는 것이니
길을 찾기 전에 한참을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
번의 헛된 시도를 하게 되더라도 천한 번의 용기로 맞서리니
그리하여 가슴의 가장 단단한 곳에 기둥을 박아
평생 쓰러지지 않는 집을 짓고,
지금 살아 있음에 눈물로 매순간 감사하나니
떨림들이 고여 삶이 되는
, 그때 나는 꿈을 이루게 되리니
인생은 () 같은
낮에도 꿈을 꾸는 자는 시처럼 살게 되리니
인생은 꿈으로 지어진 편의

- 구본형, <미치지 못해 미칠 같은 젊음> 서문에 실린

자기세계'라면 분명히 남의 세계와는 다른 것으로서 마치 함락시킬 없는 성곽과도 같은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 웬일인지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자기세계' 가졌다고 하는 이들은 모두가 성곽에서도 특히 지하실을 차지하고 사는 모양이다. 지하실에는 곰팡이와 거미줄이 없이 자라나고 있었는데 그것이 내게는 모두 그들이 가진 귀한 재산처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