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nz allein
# 미번역 그래픽노블 "완전한 고독"
(베를린에 있는 윤입니다. 앞으로 미번역된 그래픽 노블을 소개해볼까 합니다.)
타인은 지옥이다.
사르트르가 한 말이다. 타인의 시선이나 평가속에서 우리는 나를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지만 그것은 불편한 진실일 때가 많다는 얘기일 것이다. 하지만 타인이 없고 나로만 가득차 있는 세상은 또 어떨까? 그곳은 천국일까?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가면서 여러번 고독을 꿈꾼다. 출근길의 지옥철에서, 학교나 직장에서, 심지어 가장 편해야 할 가정에서조차 우리는 타인이 없는 자유로운 공간을 꿈꾼다. 아마 그곳은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온전히 나일 수 있을거라 상상하면서 말이다.
어쩌면 그곳은 샐린저가 살 것같은 숲 속의 오두막일 수도 향 내음이 나는 절 같은 곳일수 있다. 하지만 이런 곳은 어떨까? 파도소리와 저멀리 지평선만 보이는, 바다 한가운데 홀로 떠있는 작은 등대. 한적하고 좋을 것 같지 않은가? 혹 굶어 죽는 게 걱정이라고? 만약 이름 모를 친절한 누군가가 매일 배로 먹고 마실 것을 놓고 가준다면? 매혹적인 곳이지 않을까?
단 단서가 있다. 10년 이상을 홀로 살아야 한다. 누구와 말을 나눌수도 없고 읽을 거라곤 사전 한권 밖에 없다.(물론 TV와 인터넷은 없다)
어떤가? 여전히 이 등대가 당신이 꿈꾸는 곳인가? 아니면 감옥인가?
자신이라는 감옥에 갇히다
여기 50년을 그렇게 산 남자가 있다. 우리는 첫 페이지에 등장하는 갈매기에 조용히 시선을 주고 따라가다 보면 그를 만날 수 있다. 이름도 정확한 나이도 모르지만(50대라고 추측할 뿐이다) 사람들은 그를 몬스터라고 부른다. 왜 그는 외딴 등대에 홀로 살게 된 것일까?
이유는 이렇다. 오래전 그의 부모님이 세상을 등지고 등대로 이사를 왔고 이후 그를 낳았다. 그리고 그는 자라는 동안 부모로부터 세상의 무서움을 전해 들으면서 자연스럽게 바깥 세계에 공포를 갖게 되었다. 결국 그렇게 그는 부모가 죽어서도 등대에 홀로 남겨져 살게 된 것이다.
그의 하루 일과는 이렇다. 아침에 어부가 주는 식료품을 자기가 거주하는 등대탑으로 옮긴다. 어항 속 물고기 한마리에게 먹이를 준다. 해가 지기 전까지 낚시를 한다. 해가 지고 나면 그의 유일한 취미인 ‘단어상상놀이'를 한다.(이 놀이는 사전을 책상에 떨어뜨려 펼쳐지는 페이지에 기입된 단어를 읽고 그 내용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는 것이다. 그렇다. 세상경험이 없는 그는 전적으로 내용을 상상해야만 한다. 가령 Schlacht를 읽고 전투를 상상해본다)
그와 유일하게 관계를 갖는 사람은 그에게 식량을 대주는 어느 한 어부이다. 하지만 말을 나누지도 얼굴을 아는 사이도 아니다. 그저 그의 부모님의 죽기 전 부탁을 성실히 이행할 뿐이다. 그러다 어느날 한 청년이 그 어부와 함께 일하게 된다. 청년은 처음에 어부의 이러한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사정을 전해들은 후 등대에 홀로 살고 있는 그에게 차츰 관심을 갖게 된다.
어느날 청년은 그에게 쪽지 한 장을 남긴다.
“Was würde Ihnen Freude machen? (무엇이 당신을 기쁘게 하나요?)"
그 한 장의 쪽지가 그를 조금씩 바꾸어 놓는다. 그는 사전 속에서 Reise(여행)라는 단어와 Schabernack(장난)이라는 단어를 읽는다. 그는 점점 호기심을 갖게 된다. 그리고 어느날 그는 그 청년에게 이렇게 답장을 한다.
“Bilder von der Welt(세상의 사진들)”
그 답장을 보고 청년은 세상 곳곳의 사진들(기모노를 입은 여인, 해맑게 웃는 아프리카의 어린이들, 강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들, 콜로세움, 도시의 마천루 등이 찍힌 사진들이다)을 그에게 건너준다. 그는 그 사진들을 하나 하나 벽에 걸고 세상을 꿈꿔본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여전히 세상을 두려워하고 있다. 아니 어쩌면 그 공포는 더 커졌을 것이다. 공포는 희망의 크기에 비례하기 마련이니까. 게다가 거울 앞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끔찍하다는 사실도 잘 인지하고 있다. 그는 마지막으로 Gefangnis(감옥), Verurteil(편견), eingesperrt(감금된), trostlos(우울한, 쓸쓸한)라는 단어를 읽고 사전을 바닷속으로 버린다.
과연 그는 세상으로 나올 수 있을까?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그는 이제 결단해야 한다. 그의 한 손에는 밧줄이 다른 한 손에는 가방이 들려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