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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1일 월요일

#5. 미번역 그래픽 노블 'Die Welle(파도)'

오늘은 윤. 허리를 다쳐 요상한 자세로 쭈그려 쓰고 있습니다. 




책 소개에 앞서 영상 하나를 소개하자면,



"훈련을 통해 힘을 모으면 성공할 수 있어."

이 말이 이렇게 무섭게 변할 수도 있다는 거, 어렸을 땐 몰랐다. 그저 시험이 있어서 공부를 했고 성적표에 찍히는 석차 때문에 밤을 새기도 했다. 하지만 커가면서 이건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판이라는 사실을 알게됐다. 
만약 내가 대한민국의 국민이 아니었다면? 
그래서 가령 성적순으로 대학을 진학하는 입시제도를 겪지 않았다면? 
석차 등수가 찍혀 나오지 않는 성적표를 받았다면?
이제사 이런 질문을 던져봤자 무용하지만서도 분명 내가 다른 환경에서 공부를 했다면 공부에 대한 건강한 인식을 일찍부터 갖게되지 않았을까 싶다.
(여담이지만 나는 시험에 엄창 긴장하는 타입이다. 시험 전날 잠을 못자는 일은 다반사고 시험 시작후 매 분마다 시계를 보느라 시험에 집중하지 못하곤 한다. 하지만 여기 독일에 와서보니 다른 나라 친구들은 공부를 대하는 태도가 참 다양했다. 유용성에 근거해서 공부하는 친구도 있고 흥미위주의 공부를 하는 친구도 있었다. 물론 나처럼 엄청 긴장하는 친구들이 대부분이긴 했다. 그래도 이렇게 다양한 태도는 한국에서 일률화된 방식과 일률화된 목표로 공부를 해왔던 내겐 참 부러운 점이었다.)
그런데 이런 아쉬움보다 더 신기한 건 왜 그때 난 이런 의문을 생각하지 않았을까이다. 
왜 난 수학증명도 하나 하나 따져가며 공부했건만, 
왜 공부를 해야하는지 왜 성공하고 싶은지 따져 묻지 않았을까.

아마 조급해서, 그래서 묻지 않았을 것이다. 실로 사람이 조급하면 가장 중요한 질문인 '왜'를 건너뛰기 쉽다. 하지만 '왜'라는 질문은 모든 '의미있음'에 시작인 것 같다. 내가 어떤 행위를 하는 데 앞서 '왜'라는 질문을 하지 않았다면, 사실 나는 그 일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물론 그 대답이 반드시 숭고하거나 멋질필요는 없다고 본다. 하지만 '왜'라고 묻는 것 자체는 중요한 것이 아닐까?

EBS 영상에 확 심취해서 좀 옆길로 샌감이 없지 않아 있다. 하지만 이 그래픽 노블도 궁긍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다르지 않다고 본다.

간단하게 내용을 설명하자면 이 책 'Die Welle(파도)'는 실제 캘리포니아의 Cubberley라는 고등학교에서 벌어진 5일간의 실험을 다루고 있다. 영상에서 본 것 처럼 어느 역사 선생님이 나치즘을 이해시키기 위한 일환으로 학생들을 상대로 실험을 하게 되고 결국 학생들은 자기도 모르는 새, 자신들이 부정했던 나치와 똑같이 행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건은 걷잡을 수 없이 치닫는 데...

이후의 내용이 궁금하신 분은 You tube에서 '환상적인 실험'으로 검색하거나 이프에서 펴낸 '파도'라는 책을 읽어보기 바란다ㅎ

오늘도 여느때처럼 발번역이지만 몇 컷 해석해보자면,

훈련을 통한
공동체를 통한
실천을 통한
힘의 집결

실체를 토로하는 장면
" 파도의 전국연합운동은 없다. 지도자도 없다.(이전에 선생은 아이들에게 오늘 전국연합운동이 있고 진짜 지도자가 오니까 모두 모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유일한게 있다면, 바로 이 사람이다. 너희들이 무슨짓을 한지 보이느냐?너희들이 공동체라는 이름으로 우선순위에 두었던 것은 너희들의 자유를 싼값으로 팔아치운거에 불과하다.너희들은 너희들만의 확신보다 단체의 의지를 우선시 했다. 너희들은 너희들에게 속하고 싶지 않은 자들을 협박했다. 얼마나 더 너희들은 나갈 수 있을까?파치즘은 그냥 다른나라 사람들이 마주했던 무언가가 아니라, 그건 여기 우리들중에 있고 그리고 우리들중 누구에게나 있다 "

두 페이지봐도 그림체는 참... 우리 정서와 맞지 않는다. 하지만 소설 자체는 워낙 유명한 소설이고 일단 재밌으니까 금방 읽힌다. 가능하다면 우리나라에서도 이렇게 재밌는 소재의 그림책이 나와준다면 좋겠다.

2015년 5월 25일 월요일

Traumnovelle

#미번역 그래픽노블 '꿈의 노벨레'
(오늘은 본이 씁니다.)


시작하기 전 , 사족.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지난 포스팅에서 언급했던 20세기의 철학자 커플,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관계는 보통의 부부관계와는 달랐다. 같은 공간에서 살지도 않았으며 서로에게 완전한 자유 연애와 혼외정사를 보장했다. 당시로서도 지금으로서도 아주 파격적인 계약 결혼 관계였다. 당시 사르트르는 보수적인 사회에 답답함을 느끼고 있던 프랑스 청년들에게 청량한 사상을 전파하는 '사이다'같은 존재였다고 하는데, 연애에 있어서도 그는 완벽하게 실험적이었던 모양이다.
단, 조건이 하나 있었다. 서로에게 그들의 관계 밖에서 이루어진 연애의 모든 것을 말해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었다. 실제로 그들은 상대방과의 적나라한 성관계 묘사도 적극적으로 공유했다. 서로 만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서신으로 자신들의 정직한 관계를 유지했다. 기억하건대, 보부아르가 사르트르에게 보낸 편지에는 이런 구절이 있었다.

"어젯 밤, 정말 굉장했던 것은 보스트와 섹스를 했다는 것이에요."


Traumnovelle(꿈의 노벨레)의 프리돌린과 알베르티네

배우자의 혼외정사에 사르트르는 의연했을지 모르지만, 이 책의 주인공 프리돌린은 그러지 못했다. 매력적인 의사 프리돌린과 헌신적인 아내, 알베르티네는 그야말로 '모범적인 가정'을 꾸리며 이성적이고 이상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저녁, 알베르티네가 자신의 은밀한 욕망을 고백하는 것으로 일은 시작된다. 



"있잖아,
내가 오늘 하루 종일 
어떤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는지 알아요?"


알베르티네는 휴양지에서 스쳐지나간, 젊은 덴마크 장교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비록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젊은 장교를 향한 그녀의 강렬했던 성적환상과 욕망에 대해.


"당신이 그렇게 가깝게 느껴지지 않았어요.

한 순간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당신, 아이, 우리의 미래
그 모든 것들을
그와 함께라면 내던져 버릴 수 있을 것 같은."


프리돌린은 알베르티네의 내밀한 욕망에 대해 듣고 혼란에 빠진다. 다른 남자를 원하는 '나의 아내'에 대해서 그는 한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알베르티네가 장교와 성관계를 맺은 것도, 사랑의 밀담을 나눈 것도 아니지만 그는 계속해서 "덴마크 젊은 놈"에 대한 상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그 날 밤, 
그 또한 자신의 욕망을 따라,




위험하고 환상적인 난교 파티에 숨어든다.




아르투어 슈니츨러(Arthur Schnizler)

이 그래픽 노블은 오스트리아의 작가, 아르투어 슈니츨러의 같은 제목의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아이즈 와이드 셧"(Eyes Wide Shut)도 이 소설이 원작이다. Novelle란 사실 다른 게 아니라, 14~16세기 경 이탈리아에서 유행한 단편 소설 양식이다. 그러니 뜻만 보자면 이 소설의 제목은 "꿈 단편"이나 "꿈 이야기" 정도가 되겠다. 한국에서는 이 소설 양식을 따로 지칭하는 개념이 없기 때문에, 발음 그대로를 차용하여 "꿈의 노벨레"로 번역되었고 현재 문학동네에서 출판되어 있다. 아르투어 슈니츨러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동시대에 오스트리아 빈에 거주하며 그의 이론에 강하게 매료되었던 것으로 알려져있으며, 그의 작품에도 이러한 면이 상당 부분 녹아있다. 프로이트도 자신의 이론을 예술로 승화시킨 슈니츨러의 작품에 경탄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점을 참고해서 이해하면 더 재미있을지도.


야콥 힌리히 (Jakob Hinrichs)

소설도 있고, 영화도 있다. 그럼에도 이 그래픽 노블을 추천하는 이유는 일러스트레이터 야콥 힌리히의 시각적 표현이 재미있기 때문이다. 다분히 '독일'스러운 원색적인 색감도 감상 포인트 중 하나. 또한, 곤충이나 아이스크림으로 특색있게 인물을 표현함으로써 작가 자신이 이해한 소설 속 세계를 환상적으로 표현한다. 


화면의 독특한 구성 또한 흥미롭다. 한 컷, 한 컷이 단편적인 일러스트 작품이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훌륭하고, 또 원작이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글자'을 사용하지 않고도 그림만으로 서사적인 구조를 무리없이 풀어낸다.




마지막으로, 소설과 영화 그리고 이 그래픽 노블의 '완결' 방식에 차이가 있다. 소설에서는 여느 하루와 똑같은 소음으로 아침이 밝아온다면, 아이즈 와이드 셧에서는 니콜키드만이 의뭉스러운 대답으로 끝나지 않은 기분을 느끼게 한다. 그렇다면 이 그래픽 노블에서는? 직접 확인하시길!

Der Boxer - Reinhard Kleist

#3. 미번역 그래픽노블 “복서”


우리나라에서 ‘하바나 쿠바 여행기’(학산문화사)라는 책으로 알려진 작가, 라인하르트 클라이스트의 biography 그래픽노블 ‘복서’입니다.



이 책은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폴란드계 유대인 복서 '해리 하프트(본명 Hertzko Haft)'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화입니다.
물론 보다 앞서서 아트 슈피겔이 ‘쥐’라는 그래픽노블로 아우슈비츠의 비극을 그려냈지만, 클라이스트는 이보다 실제적으로 그려내길 원했다고 합니다.

해리 하프트를 모르는 한국독자들을 위해 간단한 줄거리를 요약해 보겠습니다.

가난한 야채상의 아들인 해리 하프트는 16살때 아우슈비츠에 수감됩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레아(Leah)라는 연인을 남겨두고서 말이죠.
혹독한 노동과 다른 유태인들의 죽음을 목격하면서 16살의 해리는 공포를 뼈속 깊이 각인합니다.


유태인 형제들의 죽음을 목격하고 좌절하는 해리

하지만 해리는 삶을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레아(Leah)를 다시 한번 만나는 일입니다. 
어느날 그는 SS장교의 손에 이끌려 아우슈비츠의 복서가 됩니다. 독일군들의 유희를 충족시켜주고 그 댓가로 목숨을 부지하는 이 게임에 그는 단 한번도 패배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승리가 더해질수록 죄책감도 커져갔습니다. 자기가 때려 눕힌 상대(이 역시 유대인) 가스실로 끌려간다는 사실을 알고있었으니까요.

아우슈비츠에서 목숨을 건 복싱경기

결국 그는 아우슈비츠를 운좋게 탈출하고 그로부터 얼마지나지 않아 전쟁을 끝이 납니다.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아직 레아를 만나지 못했으니까요. 
그는 레아와의 재회를 꿈꾸며 미국으로 이주를 합니다. 하지만 미국이라는 거대한 대륙에서 사람 한 명을 찾는 것 쉬운일이 아니었습니다. 해리는 레아가 신문에서 자신의 얼굴을 발견할 수 있을 만큼 유명해지는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직업복서로서의 인생을 시작합니다. 
그는 복서로 성공하게 될까요? 그리고 정말 꿈에 그리던 레아를 만나게 될까요?

감상 포인트

1. 작가 라인하르트 클라이스트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같은 테마는 선정적으로 보이기 쉬워서 
  "카메라를 최대한 멀리두고 이야기의 원경을 잡아보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럴까요? 아트 슈피겔의 ‘쥐’와는 다르게 조금 더 현실적이라는 느낌을 받았고 깊은 공감을 이끌어냈던 것 같습니다.

작가 라인하르트 클라이스트

2. 액자식 구성의 도입부가 인상적입니다.
   이 만화의 화자는 작가도 아니고 주인공도 아니고 주인공의 아들, 알란 하프트입니다. 따라서 이야기는 아들인 알란이 폭력꾼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는 흐름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전쟁의 어제와 오늘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작가의 플롯을 따라가다보면 우리 안에서의 어떤 모순을 발견하게 됩니다. 가령 이 소설속에서 이런 질문을 던져볼 수 있습니다. "해리 하프트를 그저 희생자로만 볼 수 있을까?” 처음엔 이 질문에 간단히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만화를 다 보고나서는 오히려 말문이 막혀버리더군요. 

아래 그림들은 도입부 전체입니다. 부족한 실력이지만 이해를 돕고자 직접 번역해보았습니다.

1963년 9월, 마이애미

지금 음악 틀지마!

아버지는 자신이 무언가를 말할때 이의제기를 허락하지 않으셨다.
나는 차라리 내 동생들과 수영장에 가고 싶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내가 반드시 자신과 동행해야 한다고 강요하셨다.

나는 아버지에게서 자주 공포를 느꼈다. 내게 있어서 아버지는 과거 복싱선수였던, 세상에서 가장 강한 남자였다.
그는 아들과 야구를 하며 함께 놀아주는 그런 종류의 아버지는 아니었다. 그리고 성미가 급해 자주 화를 내곤 했다.

어머니는 내게 그의 폭력적인 성격을 그가 겪은 무시무시한 과거를 들려줌으로써 이해시켜 주려고 노력하셨다. 

나는 그것을 전혀 듣고 싶지 않았다. 현재만으로도 내겐 충분히 나빴다.


너가 오늘 함께 와줘서 고맙구나.

언젠가 이 모든걸 네게 털어놓을꺼다.

오늘의 미번역 그래픽노블 소개는 여기까지입니다.
이 작가의 다른 작품이 궁금하다면, http://www.reinhard-kleist.de/

이 작품이 더 궁금하시다면 댓글이나 grandline478@gmail.com 으로 연락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015년 5월 21일 목요일

Oh diese Mädchen!

#미번역 그래픽노블 '오, 그 소녀들!' 
(베를린의 본입니다. 윤과 함께 글을 씁니다.)


사르트르의 연인이었던 철학자 시몬 드 보부아르는 자신의 저작 ‘제 2의 성’에서 이렇게 얘기했다.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

역사적으로 이상적인 여자는 신비롭고 아름다운, 비정상적인 존재로 여겨져왔다는 것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보부아르는 이러한 관점이 여자를 사회적인 ‘타자’로 만들며, 여성 스스로도 자신을 ‘타자’로 인식하게끔 한다고 얘기했다.

그래서일까. 모파상이 쓴 여자의 일생에서 잔느는 선택하지 않은 채 몰락하며, 류드밀라 울리츠카야의 소네치카는 인내한 채 늙어간다. 우리가 위의 두 작품을 읽으며 안타까움과 함께 답답함을 느끼는 이유는 그녀들이 '여성'이 아니라 '여자'인 ‘타자’ 이기 때문에 그녀들의 상처나 운명을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는데 있다.


지금은 2015년 이다. 쟌느로부터는 140여년 정도가 흘렀고, 소네치카로부터도 30여년이 흘렀다. 중간에는 빨간머리 삐삐 롱스타킹도 등장해서 독립적인 소녀들의 롤모델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이제는 여성들을 소외받고 연약한 존재로 묘사할 경우, 기분 나빠할 사람들도 많을 정도로 여성들은 자신의 '자기성'을 많이 찾아왔다. 그래서인지 이 그래픽노블은 선택하지 못하거나 상처받은 만들어진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기 보다는 ‘타자’로써 남아있지 않고 자신의 삶을 선택해 가려는 세 소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세 소녀

셋은 각기 다른 상황에서 태어난다. 탄생의 순간에서부터도 우리는 이 세 소녀가 각기 다른 삶을 살아가리라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일종의 암시인 셈이다.

클레어


라일라


아그네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들의 삶을 함께 따라가다 보면 이 셋에게 공통적으로 녹아있는 어떤 숙명적인 안타까움을 느끼게 될 지도 모른다. 


Emmanuel Lepage


이 그래픽 노블의 저자는 "체르노빌의 봄"으로 우리에게 익히 알려져 있는 엠마누엘 르파주이다. 작품을 위해 체르노빌에 직접 방문한 것으로 화제가 되었다.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 따르면 그는 공상적인 것 보다는 르포르타주적인 작품을 만드는데 관심이 있는 것 같다. 아직도 침몰하고 있는 우리의 세월호 사태에 대해서도, 관심을 보이고 직접 유가족들을 방문했던 것이 기사화 되기도 했다. 그 곳에서 그는 "진실을 위해 싸우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싶었다." 라고 얘기한다. 이 작품, '오, 그 소녀들!'도 그저 지겨운 페미니즘적 동정심리에 기대는 작품, 이라는 선입견을 조금 벗어놓고 작가의 사상을 염두에 두고 일독하면 더욱 재밌을 것 같다.

이 작품은 "체르노빌의 봄" 조금 이전의 작품으로 Sophie Michel의 텍스트와 함께 작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5년 5월 20일 수요일

Ganz allein

# 미번역 그래픽노블 "완전한 고독"
(베를린에 있는 윤입니다. 앞으로 미번역된 그래픽 노블을 소개해볼까 합니다.)



타인은 지옥이다. 

사르트르가 한 말이다. 타인의 시선이나 평가속에서 우리는 나를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지만 그것은 불편한 진실일 때가 많다는 얘기일 것이다. 하지만 타인이 없고 나로만 가득차 있는 세상은 또 어떨까? 그곳은 천국일까?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가면서 여러번 고독을 꿈꾼다. 출근길의 지옥철에서, 학교나 직장에서, 심지어 가장 편해야 할 가정에서조차 우리는 타인이 없는 자유로운 공간을 꿈꾼다. 아마 그곳은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온전히 나일 수 있을거라 상상하면서 말이다.
어쩌면 그곳은 샐린저가 살 것같은 숲 속의 오두막일 수도 향 내음이 나는 절 같은 곳일수 있다. 하지만 이런 곳은 어떨까? 파도소리와 저멀리 지평선만 보이는, 바다 한가운데 홀로 떠있는 작은 등대. 한적하고 좋을 것 같지 않은가? 혹 굶어 죽는 게 걱정이라고? 만약 이름 모를 친절한 누군가가 매일 배로 먹고 마실 것을 놓고 가준다면? 매혹적인 곳이지 않을까? 
단 단서가 있다. 10년 이상을 홀로 살아야 한다. 누구와 말을 나눌수도 없고 읽을 거라곤 사전 한권 밖에 없다.(물론 TV와 인터넷은 없다) 
어떤가? 여전히 이 등대가 당신이 꿈꾸는 곳인가? 아니면 감옥인가?



자신이라는 감옥에 갇히다

여기 50년을 그렇게 산 남자가 있다. 우리는 첫 페이지에 등장하는 갈매기에 조용히 시선을 주고 따라가다 보면 그를 만날 수 있다. 이름도 정확한 나이도 모르지만(50대라고 추측할 뿐이다) 사람들은 그를 몬스터라고 부른다. 왜 그는 외딴 등대에 홀로 살게 된 것일까? 
이유는 이렇다. 오래전 그의 부모님이 세상을 등지고 등대로 이사를 왔고 이후 그를 낳았다. 그리고 그는 자라는 동안 부모로부터 세상의 무서움을 전해 들으면서 자연스럽게 바깥 세계에 공포를 갖게 되었다. 결국 그렇게 그는 부모가 죽어서도 등대에 홀로 남겨져 살게 된 것이다.


그의 하루 일과는 이렇다. 아침에 어부가 주는 식료품을 자기가 거주하는 등대탑으로 옮긴다. 어항 속 물고기 한마리에게 먹이를 준다. 해가 지기 전까지 낚시를 한다. 해가 지고 나면 그의 유일한 취미인 ‘단어상상놀이'를 한다.(이 놀이는 사전을 책상에 떨어뜨려 펼쳐지는 페이지에 기입된 단어를 읽고 그 내용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는 것이다. 그렇다. 세상경험이 없는 그는 전적으로 내용을 상상해야만 한다. 가령 Schlacht를 읽고 전투를 상상해본다)





그와 유일하게 관계를 갖는 사람은 그에게 식량을 대주는 어느 한 어부이다. 하지만 말을 나누지도 얼굴을 아는 사이도 아니다. 그저 그의 부모님의 죽기 전 부탁을 성실히 이행할 뿐이다. 그러다 어느날 한 청년이 그 어부와 함께 일하게 된다. 청년은 처음에 어부의 이러한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사정을 전해들은 후 등대에 홀로 살고 있는 그에게 차츰 관심을 갖게 된다.

어느날 청년은 그에게 쪽지 한 장을 남긴다.

“Was würde Ihnen Freude machen? (무엇이 당신을 기쁘게 하나요?)"



그 한 장의 쪽지가 그를 조금씩 바꾸어 놓는다. 그는 사전 속에서 Reise(여행)라는 단어와 Schabernack(장난)이라는 단어를 읽는다. 그는 점점 호기심을 갖게 된다. 그리고 어느날 그는 그 청년에게 이렇게 답장을 한다.

“Bilder von der Welt(세상의 사진들)”

그 답장을 보고 청년은 세상 곳곳의 사진들(기모노를 입은 여인, 해맑게 웃는 아프리카의 어린이들, 강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들, 콜로세움, 도시의 마천루 등이 찍힌 사진들이다)을 그에게 건너준다. 그는 그 사진들을 하나 하나 벽에 걸고 세상을 꿈꿔본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여전히 세상을 두려워하고 있다. 아니 어쩌면 그 공포는 더 커졌을 것이다. 공포는 희망의 크기에 비례하기 마련이니까. 게다가 거울 앞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끔찍하다는 사실도 잘 인지하고 있다. 그는 마지막으로 Gefangnis(감옥), Verurteil(편견), eingesperrt(감금된), trostlos(우울한, 쓸쓸한)라는 단어를 읽고 사전을 바닷속으로 버린다.


과연 그는 세상으로 나올 수 있을까?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그는 이제 결단해야 한다. 그의 한 손에는 밧줄이 다른 한 손에는 가방이 들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