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본이 씁니다.)
시작하기 전 , 사족.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지난 포스팅에서 언급했던 20세기의 철학자 커플,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관계는 보통의 부부관계와는 달랐다. 같은 공간에서 살지도 않았으며 서로에게 완전한 자유 연애와 혼외정사를 보장했다. 당시로서도 지금으로서도 아주 파격적인 계약 결혼 관계였다. 당시 사르트르는 보수적인 사회에 답답함을 느끼고 있던 프랑스 청년들에게 청량한 사상을 전파하는 '사이다'같은 존재였다고 하는데, 연애에 있어서도 그는 완벽하게 실험적이었던 모양이다.
단, 조건이 하나 있었다. 서로에게 그들의 관계 밖에서 이루어진 연애의 모든 것을 말해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었다. 실제로 그들은 상대방과의 적나라한 성관계 묘사도 적극적으로 공유했다. 서로 만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서신으로 자신들의 정직한 관계를 유지했다. 기억하건대, 보부아르가 사르트르에게 보낸 편지에는 이런 구절이 있었다.
"어젯 밤, 정말 굉장했던 것은 보스트와 섹스를 했다는 것이에요."
Traumnovelle(꿈의 노벨레)의 프리돌린과 알베르티네
배우자의 혼외정사에 사르트르는 의연했을지 모르지만, 이 책의 주인공 프리돌린은 그러지 못했다. 매력적인 의사 프리돌린과 헌신적인 아내, 알베르티네는 그야말로 '모범적인 가정'을 꾸리며 이성적이고 이상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저녁, 알베르티네가 자신의 은밀한 욕망을 고백하는 것으로 일은 시작된다.
"있잖아,
내가 오늘 하루 종일
어떤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는지 알아요?"
알베르티네는 휴양지에서 스쳐지나간, 젊은 덴마크 장교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비록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젊은 장교를 향한 그녀의 강렬했던 성적환상과 욕망에 대해.
"당신이 그렇게 가깝게 느껴지지 않았어요.
한 순간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당신, 아이, 우리의 미래
그 모든 것들을
그와 함께라면 내던져 버릴 수 있을 것 같은."
프리돌린은 알베르티네의 내밀한 욕망에 대해 듣고 혼란에 빠진다. 다른 남자를 원하는 '나의 아내'에 대해서 그는 한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알베르티네가 장교와 성관계를 맺은 것도, 사랑의 밀담을 나눈 것도 아니지만 그는 계속해서 "덴마크 젊은 놈"에 대한 상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그 날 밤,
그 또한 자신의 욕망을 따라,
위험하고 환상적인 난교 파티에 숨어든다.
아르투어 슈니츨러(Arthur Schnizler)
이 그래픽 노블은 오스트리아의 작가, 아르투어 슈니츨러의 같은 제목의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아이즈 와이드 셧"(Eyes Wide Shut)도 이 소설이 원작이다. Novelle란 사실 다른 게 아니라, 14~16세기 경 이탈리아에서 유행한 단편 소설 양식이다. 그러니 뜻만 보자면 이 소설의 제목은 "꿈 단편"이나 "꿈 이야기" 정도가 되겠다. 한국에서는 이 소설 양식을 따로 지칭하는 개념이 없기 때문에, 발음 그대로를 차용하여 "꿈의 노벨레"로 번역되었고 현재 문학동네에서 출판되어 있다. 아르투어 슈니츨러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동시대에 오스트리아 빈에 거주하며 그의 이론에 강하게 매료되었던 것으로 알려져있으며, 그의 작품에도 이러한 면이 상당 부분 녹아있다. 프로이트도 자신의 이론을 예술로 승화시킨 슈니츨러의 작품에 경탄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점을 참고해서 이해하면 더 재미있을지도.
야콥 힌리히 (Jakob Hinrichs)
소설도 있고, 영화도 있다. 그럼에도 이 그래픽 노블을 추천하는 이유는 일러스트레이터 야콥 힌리히의 시각적 표현이 재미있기 때문이다. 다분히 '독일'스러운 원색적인 색감도 감상 포인트 중 하나. 또한, 곤충이나 아이스크림으로 특색있게 인물을 표현함으로써 작가 자신이 이해한 소설 속 세계를 환상적으로 표현한다.
화면의 독특한 구성 또한 흥미롭다. 한 컷, 한 컷이 단편적인 일러스트 작품이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훌륭하고, 또 원작이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글자'을 사용하지 않고도 그림만으로 서사적인 구조를 무리없이 풀어낸다.
마지막으로, 소설과 영화 그리고 이 그래픽 노블의 '완결' 방식에 차이가 있다. 소설에서는 여느 하루와 똑같은 소음으로 아침이 밝아온다면, 아이즈 와이드 셧에서는 니콜키드만이 의뭉스러운 대답으로 끝나지 않은 기분을 느끼게 한다. 그렇다면 이 그래픽 노블에서는? 직접 확인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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